[Howard Backen] People — 나파 밸리의 ‘Chic’을 정의한 건축가(1936 – 2024)

Howard Backen|하워드 배컨|은 Napa Valley를 중심으로 활동한 캘리포니아 건축가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Napa Wine Country Aesthetic’라 부르는 공간 을 모두 빚어낸 건축가로 그의 건축은 와인 산지의 풍경과 체류 경험 전체를 전제로, 언덕을 깎아 넣은 듯한 볼륨, 돌·목재·콘크리트가 섞인 재료의 질감, 그리고 눈에 띄는 제스처 없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완성도가 축적되는 디테일로 설계된다.

총 60개가 넘는 와이너리 프로젝트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은 종종 “rustic on the outside, luxurious on the inside”라는 말로 요약된다. 외관에서는 재료와 지형,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숨기지 않으려는 절제, 내부에서는 밀도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 곧 와인 에스테이트가 지향하는 집중도 높은 체류 경험으로 이어진다.

Bill Harlan과의 만남・Napa로의 이동

THE BACKGROUND

Howard Backen의 커리어가 처음부터 와이너리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커뮤니티 프로젝트와 하이프로파일 작업을 경험했고, 이후 나파 밸리로 옮겨 와이너리 건축 역사에 있어 이름을 남겼다.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빌 할란|Bill Harlan|과의 만남과 우정이었다고 한다.

빌 할란이 계획했던 Harlan Estate는 완성도 높은 프라이빗한 세계를 구축하려는 와이너리 프로젝트였고, Howard Backen이 바로 완벽한 적임자였다. 빌 할란에게는 “랜드마크를 세우는 건축”보다 “세계를 숨겨두는 건축”이 필요했다.

자연을 배경으로 두지 않고, 건물 자체가 자연처럼 보이게

THE PHILOSOPHY

Howard Backen의 건축 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풍경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서 건물이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자주 사용한 재료로는 재활용 목재|reclaimed wood|, 석재|stone|, 콘크리트|concrete|, 철|steel|, 유리|glass|등이 언급되며, 이 조합은 ‘farmhouse chic’ ‘세련된 농가?” 같은 표현으로 불려 왔다. 

THE STYLE

  • Harlan Estate의 환기 구조, 목재 스크린, 동선의 분리 방식은 기능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의 일부로 완벽하게 통합된다.
  • Howard Backen의 와이너리 건축은 양조 동선과 중력 흐름|gravity flow| 설계에 주력했다. Promontory의 핵심 설계 요소로 명시되어 있다.

Key Projects

Harlan Estate | late 1980s – mid 1990s

Howard Backen과 Bill Harlan의 관계는 처음부터 와이너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Howard Backen이 먼저 설계한 것은 Harlan의 집이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BAR Architects를 이끌던 Howard Backen과 Bill Harlan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까워졌고, Harlan은 그에게 계속 Napa로 올라오라고 권했다.

Backen은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겼다. Harlan의 집을 설계하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면서 “왜 나는 다시 안개 속으로 돌아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Harlan이 그에게 물었다. “Why can’t you be here?”

그 한마디는 결국 현실이 됐다. Harlan의 권유와 Napa에서의 인맥을 바탕으로 Backen은 1996년 Napa Valley로 거처와 작업의 중심을 옮겼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Harlan의 여러 프로젝트를 계속 맡게 된다. Harlan Estate뿐 아니라 Bond, Napa Valley Reserve, Promontory까지 이어지는 긴 관계였다.

Harlan Estate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Bill Harlan은 1984년 Oakville의 거친 언덕 40에이커를 처음 매입한 뒤, 훗날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갈 California의 First Growth를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구상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완성된 와이너리를 지었던 것이 아니라, 숲과 참나무가 남아 있던 거친 땅에 포도나무를 조금씩 심고 와인을 만들며 그 장소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Harlan Estate의 건축은 Bill Harlan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고 있던 하나의 estate에 Backen이 합류했고, 두 사람의 오랜 관계 속에서 집과 와이너리, 이후의 여러 공간들이 하나의 Napa 세계관 안에서 만들어졌다. 이 관계가 특히 재미있는 이유는 건축가와 클라이언트의 관계가 일회성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6년 Napa로 옮긴 이후 Bill과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던 시기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Dalla Valle Vineyards | early – mid 1990s

Dalla Valle Vineyards는 경사가 가파른 포도밭의 지형을 건축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건물을 평탄한 땅에 세우기보다 언덕의 경사를 따라 배치하면서 건축과 포도밭의 높이 차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와이너리에서 바라보는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아래쪽 포도밭과 주변의 Napa Valley로 이어진다. 생산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장소의 풍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Bond Estate | late 1990s – early 2000s

Bond Estate에서는 Howard Backen이 Harlan Estate에서 보여준 건축적 접근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다. Bond는 각각의 와인은 서로 다른 single vineyard의 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건축도 하나의 거대한 건물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포도밭과 와인의 성격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Dana Estates | late 2000s

Napa Valley, Winery, Vineyard, Restored Ruins, Reclaimed Barn, Hospitality

다나 에스테이트에는 100년이 넘은 와이너리의 석조 유적이 남아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7개의 건축 회사 가운데 6곳이 오래된 벽을 철거하고 새로운 시작을 제안했지만, Howard Backen은 기존 stone ruins를 보존해 새로운 와이너리의 일부로 통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는 스토리가 잘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오래된 stone ruins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고, 와이너리는 역사를 품은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역으로 약 2만 갤런 규모의 생산 시설만큼은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와인메이커가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면서도 기존 언덕의 경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배치해, 외부에서는 건축물이 주변 풍경을 압도하지 않는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private tasting table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courtyard의 1880년대 ruins를 바라볼 수 있다.

Promontory Winery | late 2000s – mid 2010s

Napa Valley, Winery, Hospitality, Reclaimed Wood, Concrete, Gravity Flow

프로몬터리 와이너리는 약 20에이커 규모의 부지는 주변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포도가 자라는 언덕의 높낮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확한 포도가 와이너리로 들어와 발효와 숙성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gravity flow‘, 즉 중력을 이용한 이동 방식으로 연결했다.

별도의 복잡한 운반 과정 없이 슬라이딩 트랙 시스템을 통해 발효 탱크로 이동한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다시 아래쪽에 위치한 cellar로 이어져 숙성과 병입을 진행한다. 자연 지형의 경사를 그대로 최적의 양조 과정에 활용한 것이다.

건축에 사용된 재료는 reclaimed wood, plaster, concrete, metal과 같은 표면의 질감과 물성이 뚜렷한 재료로, 생산 공간뿐 아니라 방문객이 와인을 경험하는 hospitality space에도 사용했다. 오래된 농업 시설이나 산업 공간을 연상시키는 재료로 Napa Valley의 이미지를 와이너리 안으로 풀어냈다.

포도밭의 지형, 포도의 이동, 와인메이킹 과정, 그리고 방문객의 경험이 하나의 건축적 시스템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의 프로젝트 목록 중 직접 방문한 와이너리 중심으로 정리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꼭 가보고 싶은 와이너리들이 많다.

THE LEGACY

Howard Backen은 2024년 7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파 밸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을 이야기할 때, 앞으로도 기억하게 될 나파 밸리의 풍경에는 Howard Backen의 건축이 있다.

2024년 그의 별세 이후에도 Backen & Backen Architecture는 그의 배우자이자 공동 창립자였던 Ann Ernish-Backen과 핵심 파트너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