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처음 배우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이다. 와인은 분명 포도로 만드는데, 왜 복숭아, 레몬 향이 나고 커피나 가죽향이 느껴지는 걸까? 이에 대한 답변을 “T”스럽게 준비해 보자면, 그 답은 수백 가지의 향기 분자에 있다고 하겠다. 포도에 존재하는 천연 향기 분자인 테르펜, 에스터, 케톤 등이 발효와 숙성을 거치며 서로 결합해 우리가 와인에서 느끼는 향, 즉 와인 아로마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와인 아로마는 보통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한다. 포도에서 오는 향 Primary, 발효와 양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향 Secondary, 그리고 숙성하며 생기는에 향 Tertiary, 각각 1차, 2차, 3차 와인 아로마라고 부른다.
이 세 가지를 알고 나면 와인을 맡을 때 “무슨 향이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여러 가지 향들을 재미있게 찾아낼 수 있다.
01. 1차 아로마 | 포도에서 시작되는 향
1차 아로마|Primary Aromas| 는 말 그대로 포도 자체에서 시작되는 가장 순수한 향이다. 포도 품종의 DNA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재배 환경에 따라 과일, 꽃, 허브 같은 향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영하고 신선한 스타일의 와인에서는 이런 1차 아로마가 지배적으로 뚜렷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소비뇽 블랑을 마셨을 때 라임이나 자몽, 허브가 떠오른다거나, 비오니에에서는 복숭아나 살구, 꽃 향이 느껴진다는 공통적인 데이타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이트 품종별 | 화이트 와인에서 자주 만나는 향
- 소비뇽 블랑: 라임, 자몽, 구스베리, 허브, 엘더플라워
- 리슬링: 라임, 복숭아, 살구, 자스민, (숙성 시) 페트롤
- 샤르도네: 사과, 배, 레몬, 흰 꽃
- 비오니에: 복숭아, 살구, 오렌지 블러섬, 허니서클
-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치, 장미, 생강, 트로피컬 스파이스
- 알바리뇨: 레몬, 흰 복숭아, 자몽 껍질, 약간의 짭짤한 느낌
레드 품종별 | 레드 와인에서 자주 만나는 향
- 피노 누아: 체리, 라즈베리, 딸기, 장미
- 까베르네 소비뇽: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민트, 허브
- 메를로: 자두, 블랙체리, 바이올렛
- 시라/쉬라즈: 블랙베리, 블랙페퍼, 올리브, 제비꽃
- 산지오베제: 사워 체리, 말린 허브, 토마토 잎
- 네비올로: 장미, 감초, 체리
물론 공식처럼 항상 맞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품종이라도 어디에서 자랐는지, 얼마나 익었는지에 따라 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02. 2차 아로마 | 발효와 양조가 만드는 향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에서는 발효가 일어난다. 효모가 포도즙 속의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동안 새로운 향들이 만들어진다. 이때부커 와인은 단순히 포도 향만 가진 음료가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발효와 양조 과정에서 자주 느껴지는 향
대표적인 것이 효모에서 오는 향인 빵, 빵 반죽, 브리오슈, 비스킷 같은 향과 유산 발효를 거치면서 얻는 버터나 크림, 요거트 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뉘앙스가 있다. 2차 아로마|Secondary aromas|라고 한다. 글라스를 천천히 돌려 향을 맡을 때, 과일 너머 와인 아로마의 복합적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이스트, 빵 반죽, 버터, 크림, 요거트, 브리오슈
- 비스킷, 토스트, 아몬드, 누룩, 곡물, 견과류
오크 숙성으로 자주 느껴지는 향
와인에서 느껴지는 모든 향이 포도나 발효에서 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나무에서 비롯된 다양한 향이 와인에 더해지거나 미세한 산화를 통해 향이 발전된다. 그래서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도 오크 사용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이 될 수 있다.
- 바닐라, 토스트, 코코넛|아메리칸 오크|, 카라멜, 토피
- 시나몬, 넛메그, 정향, 코코아, 커피
- 스모크, 시더, 구운 견과류, 초콜릿
좋은 오크 사용을 보여주는 와인은 전체적인 향에 과일 향을 유지하는 듯, 오크를 통해 좀 더 깊이와 질감이 더해진 느낌을 준다.
03. 3차 아로마 | 시간이 만들어내는 향
와인이 숙성되면 산화·환원 반응이 일어나며, 이 때 3차 아로마|Tertiary aromas|가 형성된다.
영한 와인에서 신선한 체리나 라즈베리로 느껴졌던 향이 시간이 지나면 말린 과일이나 가죽, 버섯처럼 더 복합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3차 아로마는 어떤 향 하나가 뚜렷하게 부각되기 보다는 여러 향이 천천히 겹쳐진 느낌에 훨씬 더 가까워,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런 복합성이 숙성된 와인의 재미라고 볼 수 있다.
숙성된 와인에서 자주 느껴지는 향
- 가죽, 담뱃, 시가박스, 삼나무
- 버섯, 트러플, 젖은 흙
- 말린 무화과, 프룬, 대추, 블랙티
- 다크 초콜릿, 커피, 감초, 말린 허브
모든 와인이 숙성한다고 해서 이런 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영할 때 마시는 스타일의 와인은 신선한 과일 향이 중심이고, 숙성 잠재력이 있는 와인이 충분한 시간을 잘 거치면서 조금씩 복합적인 향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WSET Global · WSET Level 2 Systematic Approach to Tasting Wine
04. 와인 아로마, 실전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와인의 향을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향을 맞히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와인의 향을 처음부터 “이건 무슨 향이지?”라고 정확하게 답을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어렵다.
세 단계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쉽다.
- 첫 번째, 과일과 꽃을 찾는다
- 두 번째, 과일 이외의 향을 찾는다
- 마지막으로, 시간이 만든 향을 찾아본다.
그리고 나아가서 내가 느낀 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를 붙여본다. 예를 들어 단순히 “딸기 향”이라고 쓰는 대신, “갓 자른 딸기”, “잘 익은 딸기”, “말린 딸기” 또는 “딸기잼” 처럼 표현할 수 있다.
WINE ENTHUSIAST · The Science Behind the Main Wine Aromas, Explained
05. 향을 더 잘 느끼는 테이스팅 루틴
와인 아로마를 느끼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보다 경험과 훈련에서 시작된다. 과일가게에 갔을 때 레몬과 자몽의 향이 어떻게 다른지 맡아보고, 꽃집에서 장미나 제비꽃의 향을 기억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향을 읽는 법, 오감의 균형
- 꽃가게 + 과일가게 방문: 향을 연습할 때, 과일가게에서 파인애플·망고·패션프루트처럼 ‘열대 과일 노트’를 실제로 맡아보자. 이후 와인 잔에서 비슷한 향이 날 때 기억된 향이 떠오르면 인지 정확도가 올라간다.
- 향신료 코너 체크: 허브, 후추, 시나몬, 제비꽃 향 등 향신료·꽃 향을 맡아보자
- 자신의 향 민감도 인지하기: 프랑스산 와인과 뉴월드 와인을 비교해보면서, 우리가 열대 과일 향을 프랑스인보다 더 잘 맡는다는 것도 알게된다. 반면 론 쉬라|Rhône Syrah|를 마셨을 때 제비꽃 향은 거의 늘 나타나는데, 아직 제비꽃 향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정확하게 알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와인에서 그 향을 느꼈다고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와인 테이스팅은 없는 향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향의 기억을 와인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다.
- 향 노트 기록하기: 와인을 마신 뒤에 떠오르는 향들을 과일, 꽃, 향신료, 나무, 흙 등으로 분류해서 노트에 적어보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향을 인지하는
NAPA VALLEY WINE ACADEMY · How To Taste Wine: A Guide to Developing Your Wine Palate
와인 아로마를 표현하는 단어에 글쓰기 능력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진다. 와인 저널리스트들이 ‘crushed violet’, ‘baked apple’, ‘wet stone’ 처럼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유독 재미있고 기발한 표현을 구사하는 소믈리에와 평론가들을 간혹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언어 감각에 감탄하며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