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발효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알코올 발효가 끝난 뒤에도 와인에는 효모, 미생물, 단백질, 폴리페놀, 주석산염과 같은 다양한 성분이 남아 있고, 산소와의 접촉에 따라 산화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반응과 미세한 물리적 변화들은 병입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양조자는 병입 전, “이 와인이 병 안에서도 지금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일련의 양조 과정이 와인 안정화|Wine Stabilization|이다. 원료와 발효 방식은 다르지만 사케 역시 발효가 끝난 뒤 여과, 저장, 가열 살균, 숙성 등의 과정을 거치며 병입 후 안정성을 관리한다.
01. 발효가 끝났는데 왜 안정화|Stabilization|가 필요할까?
알코올 발효가 종료된 직후의 와인은 아직 완성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알코올 발효가 끝났다는 것은 주로 효모가 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전환하는 과정이 종료되었다는 의미다. 이 시점의 와인은 생물학적·화학적·물리적 측면에서 불안정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으며, 병입 이후에도 변화가 지속될 가능성을 가진다.
발효가 끝난 와인에든 여전히 다양한 성분이 남아 있다.
- 잔존 효모|Residual Yeast|
- 젖산균|Lactic Acid Bacteria|
- 잔당|Resudual Sugar|
- 단백질|Proteins|
- 폴리페놀|Polyphenols|
- 주석산 및 주석산염|Tartaric Acid, Tartrates|
이 성분들은 병입 이후에도 서로 반응하거나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잔당과 살아 있는 효모가 남아 있으면 병 안에서 다시 발효가 일어날 수 있고, 단백질이 불안정하면 보관 중 혼탁도 발생할 수 있다. 주석산염이 결정으로 석출되면, 병 바닥이나 코르크 주변에서 결정이 발견될 수 있다.
Familia Morgan · Stabilization
02. 와인 안정화의 세 가지 축
와인 안정화는 크게 생물학적 안정|Biological Stability|, 화학적 안정|Chemical Stability|, 물리적 안정|Physical Stability|으로 이해할 수 있다.모두 병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변화를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한 과정이다.
① 생물학적 안정|Biological Stability|
목적은 병입 후 원하지 않는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잔존 효모와 젖산균, 그리고 잔당이다. 잔당이 남아 있는 와인에 발효 가능한 효모가 존재한다면 병입 후 재발효가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압력이 높아질 수 있으며, 와인의 당도와 향도 변할 수 있다.
대표적인 관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여과|Filtration|
- 이산화황|Sulfur Dioxide, SO₂|
- 저온 안정
- 무균 병입|Sterile Bottling|
특히 잔당이 있는 와인은 생물학적 안정성이 중요하다.
주요 방법
- 여과|filtration|
- SO₂ 첨가
- 저온 안정
- 무균 병입
특히 잔당이 존재하는 와인, 펫낫, 일부 내추럴 와인의 경우 이 단계에서의 선택은 와인의 스타일과 병입 이후의 안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② 화학적 안정
화학적 안정은 와인에 존재하는 여러 성분이 저장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을 관리하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산화|Oxidation|다. 산소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와인의 향과 색이 변화할 수 있다. 특히 화이트 와인에서는 색이 갈색 계열로 변하는 갈변|Browning|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신선한 과일 향이 감소하고 산화와 관련된 향이 나타날 수 있다.
화학적 안정화|Stabilization|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관여한다.
- 산화 노출|Oxygen Exposure|
- 이산화황
- pH
- 금속 이온
- 산화 효소|Oxidative Enzymes|
따라서 화학적 안정은 단순히 “SO₂를 얼마나 넣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③ 물리적 안정과 타르타르 결정
와인을 차갑게 보관했을 때 병 안에 작은 결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화이트 와인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것이 타르타르 결정|Tartrate Crystals|이다. 주석산이 칼륨 또는 칼슘과 결합해 형성되는 결정으로, 흔히 Wine Diamonds라고도 부른다.
와인에는 주석산에 의해 형성되는 타르타르 결정이나 콜로이드 불안정으로 인한 침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병입 이후 냉장 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정은 결함이라기보다 물리적 안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결정은 와인의 결함이 아니다. 다만 소비자가 이 결정을 유리 조각이나 이물질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자는 병입 전에 이를 관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저온 안정화|Cold Stabilization|다. 와인을 낮은 온도에 노출해 주석산염이 결정화되도록 한 뒤 제거하는 방식이다. 목적은 와인의 풍미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병입 이후 저장 과정에서 주석산 결정이 석출되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03. SO₂는 하나가 아니다
SO₂는 흔히 하나의 물질로 인식되지만, 실제 와인 안에서는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며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 자유 SO₂: 항균 및 항산화 작용 가능
- 결합 SO₂: 보호 효과 없음
- 분자 SO₂: 실제 항균 작용의 핵심 형태
이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pH다. pH가 낮아질수록 분자 SO₂의 비율은 증가하며, 동일한 양의 SO₂를 사용하더라도 pH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04. SO₂의 기능
SO₂는 단순한 보존제가 아니라, 와인의 안정성을 조절하는 기술적 요소다.
- 항균 작용
- 항산화
- 산화 효소 억제
- 효모 및 박테리아 활성 억제
- 세포막 투과성 증가 → 세포 파괴
즉, SO₂는 와인의 구조와 균형을 의도한 방향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절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05. 산과 pH의 구분
산과 pH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산은 와인에 존재하는 물질의 종류와 양을 의미하는 반면, pH는 수소이온의 활성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① 산?
와인에 존재하는 산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자유산
- 결합산
- 휘발산
pH는 맛의 인지뿐 아니라 미생물 안정성, 산화 속도, SO₂의 효율, 병입 이후의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pH는 와인의 신선함과 보존 가능성을 동시에 결정하는 핵심 지표라 할 수 있다.
② pH?
- 산의 양이 아니라 수소이온의 활성도
- 맛뿐 아니라 안정성, 색, SO₂ 효율에 직접 영향
pH는 다음을 동시에 결정한다.
- 신선함의 인지
- 미생물 안정성
- 산화 속도
- 병입 후 수명
06. 콜로이드와 정제|Clarification|
와인에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 입자들이 부유해 있으며, 이를 콜로이드라 한다. 여기에는 효모 세포, 단백질, 폴리페놀, 펙틴 등이 포함된다.
정제|Fining|는 와인 속 특정 성분이나 미세 입자를 다른 물질과 결합시켜 더 큰 입자로 만든 뒤 침전시키거나 제거하는 과정이다. 반대 전하를 가진 물질을 투입하여 이러한 입자들을 응집·침전시킨다.
이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정제제에는 벤토나이트, 젤라틴, 계란 흰자 등이 있다. 이 중 벤토나이트는 화이트 와인의 단백질 안정화|Protein Stabilization|에 널리 사용된다.
여과|Filtration|는 와인을 필터를 통과시켜 부유 입자와 경우에 따라 미생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여과의 정도와 목적은 다양하다. 단순히 와인을 맑게 하기 위한 여과부터 미생물학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멸균 여과|Sterile Filtration|까지 할 수 있다.
정제의 목적은 단순히 와인을 ‘깨끗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병입 이후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으므로 정제와 여과가 모든 와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부 생산자는 와인의 질감이나 향의 보존을 위해 정제와 여과를 최소화하거나 생략한다. 무여과|Unfiltered|가 더 좋은 와인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스타일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Beyond Cellar · 와인 설명서에서 본 이 말, 무슨 뜻일까? — Unfiltered・Unfined
07. 병 속에서 와인이 변하는 이유
병입 이후 문제가 발생하는 와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원인을 가진다.
- 생물학적 안정의 불완전성
- pH와 SO₂의 균형 실패
- 산화 관리 부족
- 물리적 안정 미확보
병입은 양조 과정의 마지막처럼 보이지만, 와인은 병 안에서도 계속 변화한다. 병입 이후에도 산화|Oxidation|, 환원|Reduction|, 향기 성분의 변화, 침전 등의 물리적·화학적 변화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안정화의 목표는 병입 당시 양조자가 의도한 와인의 상태가 보관과 유통 과정에서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병 속에서 어떤 상태로 유지될지는 양조자의 기술적 선택에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와인 안정화|Wine Stabilization|는 와인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기보다, 와인이 병 안에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고 관리하는 양조 과정에 가깝다.
SO₂, 여과, 정제, 저온 안정화, pH를 이해하면 내추럴 와인이나 무여과 와인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느냐보다 왜 했느냐일 것이다. 어떤 생산자는 안정성을 위해 여과를 선택하고, 다른 생산자는 침전이나 일정 수준의 미생물학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최소한의 개입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안정화|Stabilization|의 핵심은 개입의 양이 아니라 생산자가 원하는 와인의 미래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목표에 맞는 기술적 선택을 했는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