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알면 한 산업의 역사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미국 와인에서는 Robert Mondavi, 이탈리아에서는 Angelo Gaja, 부르고뉴에서는 Henri Jayer가 나에게는 그런 인물들이다. 단순히 좋은 와인을 만든 생산자가 아닌, 그 지역의 와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창조하고 철학이 분명하며 시장의 기준을 통째로 바꾼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사케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바로 ‘닷사이(Dassai)’를 만든 아사히주조(Asahi Shuzo)의 사쿠라이 히로시(Hiroshi Sakurai)다.
『시마 과장』 의 히로카네 켄시 작품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킥은, 한국에서도 <시마 과장>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일본 비즈니스 만화의 거장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히로카네 켄시와 닷사이의 사쿠라이 히로시는 같은 고향(야마구치현 이와쿠니) 출신으로 오랜 친분이 있었다.
2016년 시마 코사쿠 시리즈 안에는 사쿠라이 히로시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했고, 이후 실제 사쿠라이 히로시의 이야기가 만화로 제작됐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시마 코사쿠 시리즈가 과장에서 부터 시작해 부장, 임원, 사장, 회장까지 승진하는 한 직장인의 인생을 그린 만화가 일본 기업 사회를 대표하는 만화가 된 것처럼, 이 책도 닷사이가, 잘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브랜드라는 내용이 아닌, 사케가 일본 국내의 지자케를 넘어 세계적인 프리미엄 음료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 대한 비즈니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 ‘사케’가 아니라 ‘사람’이다
처음에는 작은 지방 양조장의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여기에서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선택하고,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같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수익보다 품질을 먼저 생각하는 결정을 내린 사쿠라이 히로시라는 인물의 여정을 ‘꼭 필요한 만큼만’ 보여 준다.
그리고 의외로, 끝까지 읽다 보면 사케에 대한 기초 지식이 들어온다. 정미율은 왜 중요한지, 양조장이 왜 쌀에 집착하는지, 왜 어떤 사케는 더 비싸고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 등의 전반적인 사케의 정보에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된다.
사쿠라이 히로시가 선택한 길, ‘더 좋은 술’
사쿠라이 히로시는 처음부터 사케 장인은 아니었다. 흔히 위대한 술은 대대로 내려온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하지만, <닷사이의 도전> 속 사쿠라이 히로시는 오히려 타고난 경영자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가 가업인 아사히주조를 이어받았을 당시, 일본의 지방 양조장들은 줄어든 지역 소비에 사케를 외면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 등의 환경으로 인해 많은 양조장들이 문을 닫거나 사업을 축소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쿠라이 히로시가 선택한 방향은 의외였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팔리는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생산 효율도 떨어지고 비용도 많이 드는 준마이 다이긴죠(Junmai Daiginjo)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스토리도 엿볼 수 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이 정도의 가벼운 두께의 책으로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신선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케 브랜드 : 닷사이
이 브랜드의 진짜 매력은 단지 이러한 숫자가 아니다. 닷사이는 오랫동안 ‘더 특별한 사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왔다. “지금 잘되고 있는가?”가 아니라, “더 좋아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업가도 많고, 뛰어난 장인도 많다. 그런데 가끔은 그 어느 쪽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택을 하고,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도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고, 주변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문제를 몇 년씩 붙들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만든 브랜드가 닷사이다.
숫자 뒤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케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닷사이 23, 닷사이 39 같은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숫자 뒤에 사람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숫자 뒤에 사람이 보인다. 얼마나 많이 깎았는가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사케를 이미 잘 아는 사람보다, 오히려 사케를 이제 막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더 흥미롭게 읽힐 수 있다. 사쿠라이 히로시라는 한 사람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정미율, 다이긴죠, 품질 관리, 브랜드 철학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케가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좋은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 브랜드가 어떻게 자신의 기준을 어렵게 만들어 가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Closing Reflection
다음 세대의 닷사이는 어디로 향할까
닷사이 브랜드에서 주목할 인물이 있다. 사쿠라이 히로시의 아들, 현재 닷사이 브랜드의 수장인 사쿠라이 카즈히로 사장이다.
사쿠라이 히로시가 닷사이를 일본을 대표하는 사케 브랜드로 만들었다면, 사쿠라이 카즈히로는 그 기준을 세계로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미국 뉴욕 하이드파크에 설립한 Dassai Blue 양조장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해외 수출에 집중하는 쉬운 길을 두고, 닷사이는 직접 현지에서 쌀을 재배하고 사케를 빚는 길을 선택했다.
앞으로도 사쿠라이 카즈히로가 이끄는 닷사이의 새로운 도전들을 계속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언젠가 달에서 사케를 빚는 Dassai Moon 프로젝트가 현실이 될지, 또 어떤 방식으로 사케를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Reference & Links
《닷사이의 도전》은 국내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본 글은 개인적인 독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