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페어링 메뉴가 있는 레스토랑에 가면 코스별로 각기 다른 와인을 페어링한다. 와인만 놓고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여기에는 상당히 반복적인 흐름이 있다. 이 반복되는 기본 구조를 알고나면, 이 위에 더해진 레스토랑의 개성과 셰프・소믈리에가 추구하는 방향|추구미?!|을 즐길 수 있다.
파인다이닝의 와인 페어링은 어떻게 선택될까?
파인다이닝의 와인 페어링이라고 해서 무작위로 좋은 와인만을 고르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음식과 와인의 미각적 경험, 즉 산도|Acidity|, 당도|Sweetness|, 타닌|Tannin|, 알코올|Alcohol|, 질감|Texture|, 풍미 등 기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흐름을 구성한다. 이 기본 원리를 알고 나면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추천받을 때나 와인 페어링을 즐길 때, 그 레스토랑이 기본적인 것 외 어떤 미각적 방향을 목표하여 구성하였는지, 추천하는지 또는 추구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파인다이닝의 와인 페어링은 뭐가 다를까?
파인다이닝에서의 와인 페어링|Wine Pairing|은 음식과 와인의 조합 자체, 둘이 만났을 때 서로의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뿐만 아니라 그 변화가 전체 코스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본다. 같은 와인이라도 어떤 음식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산도는 더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고, 타닌은 거칠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부드러워질 수도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와인의 산도가 음식의 풍미를 더 선명하게 말들 수도 있고, 와인의 향이나 오크 풍미가 음식의 섬세한 맛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좋은 페어링은 각각의 와인이 맛있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체 코스에서 각각의 와인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와인 페어링의 기본 요소 이해하기
레스토랑마다 기준도 다르고 예외도 많지만, 음식과 와인 페어링을 판단할 때, 다음 요소들이 기본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➊ 산도|Acidity|
음식의 무거움을 정리하는가?
산도는 음식의 지방감이나 무거움을 정리하고 입안을 다시 깨우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버터나 크림처럼 지방이 많은 음식에 산도가 좋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입안이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코스 요리에서는 한 요리를 먹고 난 뒤 다음 요리로 넘어 갈 수 있도록 palate cleansing, 즉 입안을 정리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➋ 타닌|Tannin|
단백질과 지방을 어떻게 만나는가?
타닌은 특히 레드 와인 페어링에서 중요한 요소다. 육류의 단백질과 지방은 타닌의 질감을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섬세한 생선이나 쓴맛이 있는 채소와 강한 타닌을 가진 레드 와인을 함께하면 떫고 거친 느낌이 강조될 수 있다. 따라서 “고기엔 레드”라는 공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질감의 고기인지, 어떤 소스인지, 그 음식이 얼마나 강한 타닌을 받아낼 수 있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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➌ 알코올|Alcohol|
와인의 존재감이 음식보다 과하지 않은가?
알코올은 와인의 무게감과 열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섬세한 해산물 요리에 높은 알코올과 강한 풍미를 가진 와인을 선택하면 음식보다 와인이 먼저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진한 소스와 지방감이 있는 메인 요리에는 어느 정도의 알코올과 바디가 음식의 무게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➍ 질감|Texture|
음식과 와인의 무게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
페어링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가볍고 섬세한 음식에는 가벼운 질감과 농도가, 그리고 크리미한 음식에는 어느 정도 질감과 바디를 가진 와인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버터 소스를 사용한 생선 요리에는 단순히 화이트 와인이니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스의 질감까지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의 화이트 와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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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다이닝 코스 요리에서 와인 페어링의 흐름
실제 파인다이닝 코스에서는 와인 페어링에 어떤 원칙이 적용될까? 간혹 내추럴 와인이나 셰리와 같은 주정강화 와인, 오렌지 와인 등을 독특하게 페어링 하는 레스토랑도 있고, 완전히 같은 페어링은 없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어느 정도 반복되는 스타일의 흐름은 있다.
에피타이저와 오프닝 바이트 – 샴페인 ・ 스파클링
샴페인|Champagne|이 파인다이닝 코스요리의 시작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식사의 시작에 맛을 더하기 위한 선택보다, 입안을 리셋|초기화?!| 하는 역할에 있다. 높은 산도와 탄산, 그리고 드라이한 스타일은 입안에 생동감을 만들어준다. 특히 튀김이나 지방감이 있는 한입 요리라면 산도와 탄산이 입안의 무거운 느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오프닝 와인이 샴페인인 것은 식사의 시작을 알리고 미각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즉, 샴페인의 미세한 기포와 높은 산도는 기름기와 잔맛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코스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준다.물론 모든 식사의 시작이 샴페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산도, 탄산, 드라이함의 기능일 것이다.
해산물 요리 ・ 생선화 – 오크 없는 섬세한 화이트
해산물 코스에서는 와인의 존재감이 음식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생으로 먹거나 조리 강도가 낮은 해산물은 섬세한 향과 질감이 중요한 만큼, 지나치게 오크가 강하거나 알코올이 높은 와인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래서 선택되는 스타일은 산도와 미네랄 중심의, 오크 향이 없는 화이트 와인이다. 예를 들어 Chablis, Albarino, Riesling과 같은 와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산도와 미네랄리티, 과실의 강도, 질감이 음식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와인의 목적은 풍미 추가가 아니라 해산물의 질감을 보존하는 것이다.
생선 요리와 버터 소스 – 질감을 맞추는 화이트 버건디(스타일) 샤도네
버터 소스가 등장하는 순간 페어링의 조건이 달라진다. 이제 산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와인의 질감 자체가 소스와 맞아야 한다. 생선 자체만 보면 가벼운 화이트 와인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버터와 크림이 들어가면 음식의 지방감과 질감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와인의 질감과 바디까지 고려한다. 그래서 Chardonnay, 특히 화이트 버건디 또는 유사한 스타일이 자주 연결된다. 소스와 와인이 서로를 덮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가금류·송아지 고기 – 레드는 필요하지만 강하면 안 된다!
코스가 진행되면서 음식의 풍미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한다. 닭, 오리, 송아지 등의 가금류와 육류는 생선보다 풍미가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강한 레드 와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강한 타닌을 견딜 만큼 무겁지는 않기 때문에 자칫 섬세한 풍미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레드 와인의 구조는 갖추되 타닌이 과하지 않은 레드 와인, Pinot Noir, Gamay 또는 가벼운 스타일의 Nebbiolo처럼 구조는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레드를 선택한다. 와인이 고기를 지배하지 않는 적당한 선이 중요하다.
소고기·양고기 – 구조로 정리하는 단계
메인 코스로 갈수록 음식의 지방과 단백질, 소스의 농도와 풍미가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부터는 와인의 구조|Structure| 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스의 농도, 지방, 단맛을 산도와 타닌으로 잡아주는 단계다. 고기의 부위, 조리법, 소스, 지방량에 따라 필요한 와인의 구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주 섬세한 소고기 요리에 강한 타닌의 Cabernet Sauvignon은 오히려 와인이 음식보다 앞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한 와인”이 아니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소고기에는 Cabernet Sauvignon이나 Syrah처럼 타닌과 바디가 있는 와인이, 양고기에는 풍미의 강도가 충분한 레드 와인이 선택될 수 있다.
치즈와 프리 디저트 – 방향 전환과 마무리
치즈나 프리 디저트 단계에서는 산화적인 뉘앙스가 등장하며 풍미의 방향을 바꾼다. 즉, 전환이 중요하다. 치즈의 종류에 따라 드라이 화이트, 레드, 스위트 와인, 포트, 셰리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특히 블루치즈처럼 염도가 높고 풍미가 강한 치즈에는 단맛을 가진 와인이 강력한 대비를 만들어주기에 종종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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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 와인은 디저트보다 달아야 한다.
와인이 단맛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사케에서도 마찬가지, 국룰이다!| 예를 들어 매우 달콤한 디저트와 드라이한 와인을 함께 마시면 와인이 갑자기 밋밋하고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Sauternes, Tokaji, Vin Santo, PX Sherry처럼 충분한 당도를 가진 와인이 디저트의 단맛과 균형을 이루면서도 산도가 전체적인 무게를 잡아줄 수 있다. 단, 디저트가 항상 단 것은 아니므로 치즈나 과일, 산미가 강한 디저트인 경우, 드라이 와인도 있을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추천을 받을 때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까?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가 와인을 추천할 때 이유를 묻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질문하기도 전에 먼저 설명해주는 곳이 더 많다. 질무은 단순히 와인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믈리에가 지금 이 코스에서 와인에 어떤 역할을 맡겼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듣다보면 그 레스토랑이 어떤 음식을 만들고, 어떤 와인을 좋아하며, 식사를 어떻게 설계했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대화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균형을 함께 만들어가는 매너다.
왜 어떤 와인 페어링은 어색하게 느껴질까?
간혹 맛없는 와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제외하면 전형적으로 와인이 요리의 흐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좋은 페어링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흐르면서 음식의 구조를 해치지 않는, 너무 자연스러운 페어링이다. 음식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와인이 음식 향을 덮지 않으며, 한 잔을 마신 뒤 다음 한입이 자연스럽게 기대된다면 페어링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페어링 감각을 연습하자!
일상 음식으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다. 단, 기준 질문을 “무슨 와인이 잘 어울릴까?” 보다 “이 음식의 특징 중 어떤 요소를 와인이 정리하거나 보완, 나란히 맞추어야 할까?”라고 바꾸면, 훨씬 쉬워진다.
- 감바스 파스타
→ 올리브 오일과 마늘의 풍미가 강하니 기름기와 마늘 향이 오래 남지 않도록 입안을 정리해볼 수 있다.
→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 - 크림 파스타
→ 크림의 농도와 지방감에 맞춰 어느 정도 바지와 질감이 필요하다.
→ 질감 있는 화이트 와인 - 불고기
→ 불고기의 단맛과 간장, 마늘의 풍미에 부드러운 고기
→ 과실과 산도가 살아있는 가벼운 레드 와인|특히, 단짠 구조에는 과한 와인은 충돌을 만든다!|
파인다이닝의 와인 페어링 = 레스토랑의 취향을 읽는 것!
여기까지 알고 나면, 이제 와인 페어링을 보는 재미가 한 단계 달라진다. 수많은 와인 중에서 왜 이 지역, 이 생산자, 이 빈티지, 이 스타일인지, 그리고 그 레스토랑이 만들어주는 경험은 어땠는지까지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파인다이닝의 와인 페어링은 단순한 음식과 와인의 궁합 정도를 넘어서는 단계가 된다. 와인 페어링의 진짜 재미는 무엇이 음식과 잘 맞는지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좋은 선택지 가운데 왜 이 와인이 선택되었는지를 유심하게 읽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