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알코올 발효가 끝났다고 곧바로 투명한 사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로미에서 액체를 분리하고, 남은 탁도와 색을 조정해 맑은 사케를 만드는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 Part | 주제 | 주요 내용 |
|---|---|---|
| Part 1 | 알코올 발효를 위한 준비 | 쌀, 찐 백미, 코지, 효모 선택과 발효 준비 |
| Part 2 | 알코올 발효의 관리 | 발효 진행 과정과 양조자의 관리 방법 |
| Part 3 | 발효 후 양조자의 선택 | 발효가 끝난 뒤 스타일을 결정하는 여러 선택 |
| Part 4 | 맑은 사케 만들기 | 압착, 침전, 여과를 통한 사케의 정제 |
| Part 5 | 화입 | 가열 살균의 목적과 화입 방식에 따른 차이 |
| Part 6 | 저장과 패키징 | 숙성, 저장, 병입과 출하 전 관리 |
압착·침전·활성탄 처리 | Making Clear Sake
알코올 발효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투명한 사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moromi, 醪)는 액체 속에 쌀과 코지 입자, 효모가 뒤섞여 있는 걸쭉한 상태다. 우리가 잔에서 만나는 맑은 사케를 만들려면 먼저 액체와 고형물을 분리하고, 남아 있는 미세한 입자를 가라앉힌 뒤, 필요에 따라 색과 향미를 조정해야 한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Post-fermentation Activities가 발효 후 진행되는 전체 공정의 지도였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가운데 모로미가 맑은 사케로 바뀌는 과정만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사케는 처음부터 맑은 술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사케는 오늘날처럼 완전히 투명한 모습이 아니었다. 발효가 끝난 술에는 쌀 입자와 효모를 비롯한 여러 고형물이 남아 있었고, 과거에는 이것이 포함된 상태로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양조 기술과 분리 장비가 발전하면서 양조가들은 모로미에서 액체를 더욱 정교하게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침전과 활성탄 처리 같은 기술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익숙한 투명하고 옅은 색의 사케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사케가 반드시 물처럼 투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니고리자케(nigorizake)처럼 일부 쌀 입자와 효모를 남겨 탁한 외관과 풍부한 질감을 표현하는 스타일도 존재한다. 맑음은 사케의 절대적인 품질 기준이라기보다, 양조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스타일이다.
일본 법에서 말하는 사케의 ‘여과’란 무엇일까?
“일본 법에 따라 모든 사케는 여과되어야 한다”는 설명은 조금 주의해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과는 완성된 술을 미세한 필터에 통과시켜 완전히 투명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를 체나 천 등을 사용해 액체와 고형물로 한 번은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니고리자케 역시 성긴 망이나 거친 천을 통과시킨다. 작은 쌀 입자와 효모가 술에 남아 있어 외관은 탁하지만, 법적으로 필요한 분리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케로 분류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서로 다른 공정을 구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려 한다.
- 모로미에서 사케와 술지게미를 나누는 과정: 압착·분리(pressing 또는 mash filtration)
- 남은 미세 입자나 활성탄을 제거하는 과정: 2차 여과(secondary filtration)
일본 주류종합연구소(NRIB) 역시 이를 각각 mash filtration (pressing)과 secondary filtration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모로미에서 사케를 분리하는 조소리(Jōsō)
발효가 끝난 모로미에서 액체와 고형물을 분리하는 작업을 일본어로 조소리 또는 조소(上槽, jōsō)라고 한다. 영어 자료에서는 주로 pressing 또는 filtration이라고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빠져나온 액체가 사케가 되고, 남은 쌀 고형물은 사케카스(sake kasu, 酒粕), 즉 술지게미가 된다.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액체는 통과시키고 쌀 고형물은 붙잡아 두는 천이나 필터를 사이에 두고 모로미를 분리한다. 다만 어떤 장비를 사용하고 어느 정도의 압력을 가하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야부타 압착: 현대 사케 양조의 표준
야부타 여과·압착(Yabuta filtration)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효율이 높고 공정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으며, 장비를 세척하고 관리하기도 비교적 쉽다.
야부타는 크고 단단한 철제 프레임 안에 여러 개의 좁은 여과실이 나란히 설치된 구조다. 각 여과실은 액체는 통과시키지만 쌀 고형물은 붙잡아둔다. 여과실 사이에는 공기를 주입해 부풀릴 수 있는 풍선 모양의 압착막이 자리한다.
먼저 발효가 끝난 모로미를 각각의 여과실에 채운다. 여과실과 압착막을 프레임 한쪽으로 밀어 단단히 고정한 뒤, 압착막에 공기를 주입한다.
압착막이 부풀면서 생기는 압력이 모로미를 누르면 액체인 사케가 필터를 통과해 밖으로 빠져나온다. 반면 쌀 입자와 효모 등의 고형물은 여과실 안에 남는다.
압착이 끝나면 장비를 열고 남은 사케카스를 꺼낸다. 이때 사케카스는 수분이 빠진 납작한 판 모양으로 남는다. 흔히 볼 수 있는 판상 형태의 사케카스가 바로 야부타 압착에서 나온 것이다.
야부타는 대량생산만을 위한 장비가 아니다. 압력과 시간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프리미엄 사케를 포함한 다양한 품질의 사케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어떤 압착법을 선택했는가만으로 사케의 품질을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후네 압착: 천 주머니와 압력으로 술을 분리하다
후네 압착(Fune filtration)은 야부타보다 앞서 사용된 기계식 압착 방식이다.
후네(槽, fune)는 일본어로 배를 뜻하지만, 사케 양조에서는 모로미가 담긴 천 주머니를 쌓아 압착하는 직사각형 용기를 가리킨다. 용기의 생김새가 배와 닮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를 여러 개의 천 주머니에 나누어 담은 뒤, 이 주머니들을 후네 안에 가지런히 쌓는다. 용기가 가득 차면 위에서 압력을 가해 주머니 안의 액체를 밀어낸다. 사케는 천을 통과해 아래로 흘러나오고, 고형물은 주머니 안에 남는다.
후네는 야부타가 보급되기 전에는 중요한 기계식 압착 기술이었다. 그러나 야부타보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압착 조건을 일정하게 제어하거나 장비를 세척하는 일이 번거롭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과거만큼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네가 뒤떨어진 방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일부 양조장은 전통적인 작업 방식과 원하는 사케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여전히 후네를 사용한다. 좋은 사케는 야부타, 후네, 후쿠로 중 어느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장비의 이름보다 양조가가 그 방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후쿠로즈리와 시즈쿠: 압력 없이 얻는 사케
양조장의 최고급 사케나 특별한 출품주는 종종 후쿠로즈리(fukurozuri, 袋吊り) 방식으로 분리한다. 영어로는 drip method, sack-drip 또는 gravity drip이라고 표현한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를 천 주머니에 담고, 그 주머니를 나무 막대 등에 매달아둔다. 야부타나 후네처럼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오직 중력에 의해 천 밖으로 떨어지는 사케 방울만을 천천히 모은다.
이렇게 얻은 사케를 시즈쿠자케(shizukuzake, 雫酒)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즈쿠(雫)는 ‘물방울’을 뜻한다.
압력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모로미의 고형 성분이 술과 함께 강제로 밀려 나올 가능성이 적다. 상대적으로 섬세하고 깨끗한 향미와 부드러운 질감을 얻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양이 적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며, 주머니를 하나씩 채우고 매달아야 하므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케 전체에 적용하기보다는 양조장이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고급 사케에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시즈쿠 방식 자체가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원료와 정확한 발효 관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압착법은 이미 만들어진 모로미의 성격을 어떻게 꺼내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마지막 선택에 가깝다.
Quick Guide | 사케 압착 방식
| 압착 방식 | 모로미를 담는 방법 | 압력 | 핵심 특징 |
|---|---|---|---|
| 야부타 Yabuta |
기계 내부의 여러 여과실에 주입 | 공기압 사용 | 효율이 높고 압착 조건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쉽다. |
| 후네 Fune |
모로미를 담은 천 주머니를 용기 안에 쌓음 | 위에서 압력 적용 | 야부타보다 먼저 사용된 전통적인 기계식 압착 방식이다. |
| 후쿠로즈리·시즈쿠 Fukuro / Shizuku |
모로미를 담은 천 주머니를 매달아둠 | 외부 압력 없음 |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사케 방울만 모은다. |
※ 세 방식 모두 모로미에서 액체인 사케와 고형물인 사케카스를 분리한다. 압착 방식만으로 사케의 품질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양조가가 원하는 스타일과 생산 조건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한다.
압착한 사케가 투명하지 않은 이유
압착을 마친 사케도 처음에는 약간 흐리게 보일 수 있다. 천이나 필터를 통과할 정도로 작은 쌀 입자, 효모 및 여러 미세 고형물이 액체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탁도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침전(sedimentation)이다. 일본어로는 오리비키(ori-biki, 滓引き)라고 한다.
압착한 사케를 탱크에 넣고 며칠 동안 움직이지 않게 두면, 액체 속의 작은 입자들이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침전이 끝나면 위쪽의 맑은 사케만 다른 탱크로 옮기고 바닥에 쌓인 침전물은 남겨둔다.
와인 양조에서 찌꺼기를 가라앉힌 뒤 위의 맑은 와인을 다른 용기로 옮기는 래킹(racking)과 비슷한 원리다.
침전은 압착 과정에서 제거하지 못한 미세 입자를 자연스럽게 가라앉혀 사케의 투명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모든 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갓 압착한 사케에는 왜 색이 있을까?
갓 압착한 사케는 완전히 무색이 아니라 옅은 레몬색이나 연한 녹색을 띨 수 있다. 이러한 색은 코지를 비롯한 원료와 발효에서 유래한 여러 성분 때문에 나타난다.
오늘날 소비자는 대체로 맑고 투명한 사케에 익숙하지만, 옅은 색 자체가 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양조한 사케가 어느 정도 색을 지니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양조가가 더 투명하고 색이 옅은 사케를 원한다면 활성탄 처리(charcoal fining)를 선택할 수 있다.
활성탄 처리는 사케의 색만 제거할까?
활성탄 처리를 할 때는 미세한 활성탄 분말을 스테인리스 탱크 속 사케에 넣는다. 활성탄은 표면적이 매우 넓어 사케 속의 여러 성분을 흡착한다.
사케의 색을 만드는 일부 성분뿐 아니라 양조가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향과 맛, 거친 질감에 관여하는 성분도 활성탄에 달라붙는다. 처리가 끝나면 사케를 종이 필터 등에 통과시켜 활성탄 분말과 그 표면에 붙은 성분을 함께 제거한다.
그 결과 사케의 색은 옅어지고, 향미와 질감도 한층 정돈될 수 있다.
그러나 활성탄은 원하는 성분과 원하지 않는 성분을 완벽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색이나 불쾌한 향을 줄이는 동시에 양조가가 남기고 싶었던 향, 풍미와 질감까지 제거할 수 있다. 활성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사케가 깨끗해지는 대신 개성과 입체감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활성탄 처리는 단순한 정화 작업이 아니다.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양조가의 스타일 선택이다.
무로카는 정말 ‘아무것도 여과하지 않은 사케’일까?
활성탄 처리를 하지 않은 사케는 흔히 무로카(muroka, 無濾過)라고 부른다.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무여과’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로카를 모로미를 전혀 거르지 않은 사케로 이해하면 안 된다. 무로카 역시 야부타나 후네, 후쿠로 같은 방식으로 사케와 사케카스를 분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나 양조 공정상 일반적인 세이슈가 될 수 없다.
실제 양조 현장에서 무로카는 보통 다음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로 사용된다.
- 압착 이후 별도의 2차 여과를 하지 않은 사케
- 활성탄을 사용한 여과를 하지 않은 사케
양조장마다 무로카의 정의와 적용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라벨에 무로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탁한 사케라는 뜻은 아니다. 투명해 보이는 무로카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활성탄을 사용하지 않으면 사케 본래의 색이 조금 더 남을 수 있고, 향미와 질감도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외관을 완전히 무색으로 만드는 것보다 사케가 지닌 고유한 풍미와 질감을 보존하는 편을 선택하는 양조가도
맑은 사케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거르는 일이 아니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가 우리가 마시는 맑은 사케로 바뀌기까지는 한 번의 여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먼저 야부타, 후네 또는 후쿠로 방식으로 액체와 사케카스를 분리한다. 이후 사케에 남아 있는 미세 입자를 침전시키고, 필요하다면 활성탄을 사용해 색과 일부 향미를 조정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발효가 끝난 모로미 → 압착·분리 → 침전 → 활성탄 처리 및 2차 여과(선택) → 맑은 사케
이 가운데 어느 방식이 무조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적인 야부타로도 뛰어난 사케를 만들 수 있고, 전통적인 후네나 노동집약적인 시즈쿠 방식으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케를 얼마나 투명하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다. 양조가가 발효를 통해 얻은 향과 맛, 질감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맑은 사케는 단순히 깨끗하게 걸러낸 술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을 거쳐 완성된 술이다.
Closing Reflection
한 단계씩 살펴보면 사케 양조가 보인다
사케 양조의 전체 과정을 한 번에 펼쳐놓으면 생각보다 많은 용어와 공정이 등장한다. 쌀을 깎고 찌는 일부터 코지와 주모를 만들고, 모로미의 발효가 끝난 뒤 압착·침전·여과를 거치기까지 모든 단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서 양조 과정을 순서대로 나누어 하나씩 다시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 공정을 따로 이해한 뒤 전체 흐름 속에 다시 놓아보면, 양조가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사케의 향과 맛, 질감에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대체로 WSET Level 2 Award in Sake의 중급 수준이다. 사케 양조의 기본적인 흐름과 주요 선택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지, 실제 양조 기술의 모든 영역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원료 쌀의 성질과 코지의 효소력, 효모와 미생물 관리, 발효 온도의 변화, 압착 시점과 압력, 여과 및 숙성 조건처럼 훨씬 세밀한 양조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한 단계씩 나누어 보고 있지만, 이 조각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한 병의 사케가 왜 그런 향과 맛을 지니게 되었는지도 조금 더 선명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Learning sake, one step at a time.
Reference & Links
-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Brewing — A Comprehensive Guide to Japanese Sake
- WSET — 5 Sake Facts Every Drinks Professional Needs to Know
NRIB 가이드의 ‘Mash Filtration (Pressing), Secondary Filtration’ 항목에서 사케의 압착, 무로카 및 2차 여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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